품다, 농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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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다, 농촌을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천천히, 여유롭게 전남 담양 삼지내마을

빛 고을 광주를 살짝 지나쳐 들어선 곳, 담양 창평에 대한민국 최초의 슬로시티마을 삼지내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세 개의 물길이 만나는 땅. 누렇게 익은 벼가 한창인 들판을 지나 옛 돌담이 구불구불 아늑한 마을에 들어서자, 무화과 익는 냄새와 인동초 냄새가 향긋했다. 풍부한 먹거리와 문화유산이 세계적으로 꼽히는 마을, 삼지내마을을 찾았다.

글 구지회 / 사진 정우철

나라의 위기 때마다 맞서 싸우다

기와집과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삼지내마을은 언뜻 보면 드라마 세트장처럼 보일 정도로 옛 모습이 잘 보존돼 있다. 격동의 시대를 이만큼이나 온전하게 통과할 수 있었던 비결은, 남달랐던 마을의 정신을 마을 사람 모두가 기억하는 덕이다. "우리 마을은 나라의 위기 때마다 맞서 싸웠습니다. 임진왜란 때 용감하게 싸운 고경명 의병장의 둘째 아드님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지금의 창평 고씨 집성촌이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마을 사람들과 지도층이 똘똘 뭉쳐 일본 세력에 맞서기도 했습니다. 1906년 고재욱 전 동아일보 사장은 '상월정'을 세워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어요. 상월정은 현재 창평초등학교로 남아 있습니다. 또 고광표 어르신은 창평 상회를 만들어서 매점매석하는 일본 상인을 막고, 무이자로 조선인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일본 고리대금업 자본을 막았지요. 그 분의 고택이 지금 고재선 고가라는 이름으로 마을에 남아 있습니다." 마치 대하소설처럼 펼쳐지는 삼지내마을의 역사! 삼지내마을의 정미진 사무국장은 수백 년의 이야기를 단숨에 풀어내었다. 이야기의 끝은 고씨 문중이 가솔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토지를 기증한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니까 현재의 삼지내마을 사람들은 모두, 고씨 문중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마을 사람들이 고씨 문중이 일군 옛 흔적을 지키려 노력했던 연유가 이해 가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슬로시티

마을에 오면 곳곳의 달팽이 표식을 찾아보자. 꼿꼿한 자부심으로 옛 모습과 전통을 지켜낸 삼지내마을이 2007년 대한민국 최초의 슬로시티 중 하나로 인정받은 흔적이다. '슬로시티'란 대량 생산과 산업화가 낳은 폐해로부터 '느리고 풍요로운 삶'을 지키는 마을을 선정하여 소개하는 세계적인 단체이자 운동이다. 2010년 기준 전 세계 20개국 135개 도시가 슬로시티에 가입해 있는데, 슬로시티 선정 기준은 전통 문화유산과 슬로푸드(전통 식품), 주민들의 문화유산 유지 의지와 인식 등이다. 삼지내마을의 경우에는 호남의 장 문화, 쌀엿과 한과, 돌담과 고택 등 덕분에 슬로시티로 지정됐는데, 마을의 노력도 눈 여겨 볼 부분이다. 마을이 진행한 삼지천 복원 사업, 돌담 복원 사업, 흙으로 마을길을 덮는 안길 사업, 전선주 지중화 작업 덕분에 옛 풍경을 더욱 잘 느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삼지내마을이 슬로시티로 선정되면서 관광객도 늘었다. 모두가 앞을 향해 달리는 시대, 삼지내마을의 미래는 오히려 '오랜 전통'인 셈이다.


'오물떡 조물떡' 즐거운 체험 가득

슬로시티 선정을 계기로 삼지내마을이 운영한 마을 명인 사업은 현재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 마을이 교육하고 선정했던 명인들이 환원 차원에서 삼지내마을의 체험 프로그램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 프로그램은 떡, 엿, 한과를 만드는 체험으로, 참여자는 국내외 전 연령을 아우른다. "외국인들의 경우, 과자의 원료가 되는 조청의 원료가 쌀이라고 알려주면 무척 놀라죠. 또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떡 반죽을 오물조물거리는 모습이 정말 귀여워요. 떡 체험 프로그램의 이름이 '오물떡 조물떡'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어르신들이 오실 때에는 본인의 경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세요.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사리는 심정으로, 어르신들 앞에서는 강사들도 배우는 입장이 되지요." 박제된 전통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전통을 전하는 삼지내마을! 소쇄원, 명옥헌, 죽녹원 등 가까이 들를 수 있는 주변 관광지 또한 풍부하다. 누군가에게는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하고, 어느 이에게는 휴식을, 또 다른 이에게는 배움을 선사하는 삼지내마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 보자.


MINI INTERVIEW 삼지내마을에서 여유를 가져보세요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 하는 순간, '쉼'이 되지 않아요. 삼지내마을이 크거나 복닥대는 곳은 아니기 때문에 젊은 분들 중에는 심심할 수도 있는데, '여유'와 '심심'은 사실 한 끗 차이예요. 돌담따라 한 바퀴 돌면서 쉬어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시면 충분히 즐거우 실 거예요.
홈페이지 바로가기

삼지내마을 정미진 사무국장


삼지내마을의 특별한 풍경들

고택

마을 돌담 안에는 멋진 한옥이 가득 서 있다. 특히 마을에 옛 빛깔을 더하는 것은 고씨 집안이 살았던 고택들이다. 마을 사람들의 휴식을 위해 내어 주었다는 2층 누각 남극루, 고재선 가옥·고정주 가옥·고재환 가옥 등 마을의 역사 속 인물들이 살았던 옛 가옥들이 그것이다. 현재 수리 및 보존 문제로 인해 고택들의 안을 둘러볼 수는 없지만, 돌담 너머 숨은 자리에 대문을 세우는 가문의 전통을 통해, 겸양하는 자세로 다른 이들을 위하던 고씨 문중의 정신을 느낄 수가 있다.

돌담

삼지내마을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풍경은 약 4km에 달하는 돌담이다. 400~500년 동안 자리를 지킨 이 돌담은 6·25 전쟁을 지나며 황폐해지고 새마을 운동으로 인해 허물어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지켜낼 수가 있었다. 담을 쌓을 때에는 흙과 자갈을 섞어 만들어 올리는데, 흙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쌓아야 하기 때문에 완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오래 마른 밑단일수록 색이 짙은 것이 특징이다. 쌓은 모양이 곧지 않고 구불구불한 것 또한 시간차가 있는 공법 때문! 또 다른 특징은 그 높이가 무척 낮다는 것으로, 공간 꾸밈 내지는 경계 구분 정도의 역할이었을 정겨운 돌담이다.

한과 & 쌀엿

슬로시티 삼지내마을에는 한국전통식품명인이 3명이나 등록돼 있다. 명인들이 만드는 쌀엿, 유과, 매작과 등 다양한 먹거리는 마을 내 '달팽이 가게'에서 살 수 있는데. 무엇을 먹어도 딱딱하거나 들러붙지 않고 공기처럼 사라지는 식감이 역시 명인의 솜씨다. 삼지내마을에 유달리 쌀엿과 매작과 등 고급 전통 과자들이 발달해 있는 이유는 역시 '쌀'이 풍부하기때문! 삼지내마을은 옛 호남의 행정구역인 '창평'에 속해 있었는데, 이것이 호남의 삼대 평야(창평, 참평, 남평) 중 하나였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 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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